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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서비스가 엉망진창이다.

 

난 그저 집중 가능한 공간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저 쾌적한 공간이 필요했을뿐인데, 뭐가 이렇게 힘든건가.

 

[ A 독서실 ]

7월, 한여름.. 놀랍게도 이 곳은 선풍기만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잉? 한여름에 선풍기만 돌린다고? 에어컨이 없다고?

그렇다. 에어컨이 고장났는데, 언제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단다.

선풍기 여러개를 복도 곳곳 비치해서 나름의 쾌적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기 어디 산골짜기 구석에 사셨나요?

(아닙니다. 2008년의 서울특별시 內 사설독서실 이야기 입니다.)

 

어디서 뭘 하든 '최저가' 서비스는 셋 중 하나인 것 같다.

 

1. 원가절감 혁신을 통한 가격 혁신

2. 저품질 저가격 포지셔닝

3. 덤핑, 치킨 게임

 

A독서실은 2번 사례였다. 에어컨 등 시설투자를 더이상 하지 않고 저가격으로 포지셔닝한 것.

그래도 나름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다만, 덥지 않으면 나도 그냥 다녔을텐데 문제는 덥다는 것이다.

여름방학이라 입실자는 많은데 선풍기로만 하려니까 낮에는 독서실 좌석에 앉아있어도 땀이 줄줄 났다.

 

도저히 더워서 못하겠다고, 죄송하다며 환불을 받았다.

한 달 (30일)이용료 10만 원을 결제했지만 이틀 이용하면 일권 1일=1만 원으로 계산된다.

내 잘못도 아닌데, 이건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명시되어있는 규정이라 수긍했다.

2만 원을 빼고 8만 원을 돌려받았다.

아까웠지만 별 수 없었다. 어차피 두 번 다시 안 올 곳.

 

[ B독서실 ]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갔다.

1만 원을 더 내면 월 11만 원에 이렇게 시원한 곳을 이용할 수 있다니!

진작에 이 곳으로 오지 않은 것을 약간 후회했다.

근데 여긴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뭔가 불안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줄줄 나던 A독서실에 입실자가 더 많다니,

1만 원 차이의 힘이 이렇게 큰가 싶었다.

 

잘되는 곳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안되는 곳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시원함을 넘어서 추웠다.

옮긴 짐을 정리하는 중에도 '아.. 이거 너무 온도가 낮은거 아니야?'싶었다.

그런데 짐을 다 정리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발이 너무 시려운거다.

저~ 구석에서 '콜록콜록'소리가 들려온다.

 

나만 추운 게 아닌 것 같다.

열람실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상태인지 둘러봤다.

한 명 빼고 모두가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있다.

열람실 안쪽 벽에 스탠드 에어컨이 서있다.

< 설정온도: 18도 > "절대 만지지 마시오."

 

50대 사장님이 계신 총무실로 갔다.

"사장님, 너무 추운 것 같은데 온도 좀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안돼! 다른 사람들 다 더워하니까 추우면 겉옷 가져와서 입어!

점심식사도 할겸 집에가서 옷을 가져왔다.

집으로 갔다오는 길에 계속 생각을 했다.

'그래.. 땀흘리면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춥게 하는 게 나을거야...'

 

독서실로 돌아오니 정말 냉장고에 들어온 것 같다.

가져온 수면양말과 겨울잠바를 무장을 했다.

PMP로 인강을 듣는데 '콜록콜록' 소리가 이어폰을 뚫고 들어온다.

 

저녁 10시.

우리 열람실에 나밖에 안 남은것 같다.

여전히 에어컨은 풀가동중이다.

이제 에어컨을 꺼도 좋을 것 같다. 

내 돈이 아니지만, 불필요하게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도 아깝다.

 

에어컨을 꺼달라고 하려고 총무실에 갔는데 사장님이 안계신다.

방으로 돌아와 에어컨을 껐다.

 

10분이나 지났을까.

사장님이 방에 들어와서 에어컨을 다시 켜고 돌아나간다.

다급하게 사장님을 불러서 말씀드린다.

 

"앗, 사장님! 저 혼자 밖에 없고 추워서 제가 끈겁니다. 에어컨 안 켜주셔도 됩니다~"

난, 사장님이 나를 위해서 켜준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덥지도 않고, 오히려 추우니 전기세도 아낄 겸 꺼놓으라고 말씀드린거다.

 

너, 안내문 못봤어? 누가 니 마음대로 에어컨 만지래


예상치 못했던 싸늘한 반응에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저 혼자밖에 없고, 추운데 사장님이 총무실에 안계셔서 껐습니다."

 

사장님은 내 말에 대꾸도 없이 그냥 나간다.

이게 뭐지? 싶다. 

어이가없다.

 

왜 사설 독서실은 적도 아니면 북극인가 싶다.

사장님으 왜이렇게 화가 나있는지 싶다.

 

훗날, 독서실과 스터디카페를 운영하면서 알게됐다.
'온도 조절 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라서 운영자 입장에서 예민해질수밖에 없다.
고객들 간 체감 온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만족'이라는 게 어렵다.

그래서 B독서실 사장님은 '추운 사람은 겉옷 입으면 되니까, 덥다는 사람 없도록 만들자'라는 기준을 갖고있었던 것 같다. 수 년간 독서실을 운영해오면서 에어컨으로 고객들끼리 싸우는 것을 워낙 많이 경험했을거다.

그러다보니 "절대 만지지 마시오" 라는 경고를 내가 어긴 것에 진심으로 화가 났던거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장이 세워놓은 기준, 규칙이 있는데 고객이 마음대로 행동한 것에 화가 난거다.
(본인은 고객의 상황을 이해못해주지만, 본인이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선 고객이 이해해주길 바랬는지도..)

당시 고3 학생 고객이었던 내 입장에서 그 사장님의 예민한 반응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장의 입장을 겪어보니, 그 때 그 사장님의 반응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돈을 좀 덜 벌더라도, 에어컨 전기세 낭비가 좀 있더라도 신경을 안쓰는 게 중요했을거다.
심지어 그 사장님은 그 건물에 거주하는 꼬마빌딩 소유주였으니까.